감기는 전 세계 모든 인구가 일생 동안 수십 차례 이상 경험하는 흔한 질환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감기는 단일한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매우 다양하며, 200종 이상이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감기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바이러스의 종류와 특징, 변이 특성, 감염 경로, 진단 및 예방법까지 알아보겠습니다.
리노바이러스: 감기 원인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범
감기 바이러스 중 가장 흔한 원인은 단연 리노바이러스(Rhinovirus)입니다. 리노바이러스는 전체 감기 환자의 약 50~70%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피코르나바이러스(Picornaviridae) 과에 속하며, RNA 바이러스입니다. 특히 계절이 바뀌는 봄, 가을에 감염이 급증합니다. 리노바이러스는 100종 이상의 혈청형(serotype)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면역 시스템이 한 번 감염되었다고 해도 다시 감염되는 이유가 됩니다. 한 번 걸렸다고 해서 평생 면역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혈청형에 대해서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주로 사람의 비강(nasal cavity)에 감염되며, 체온보다 약간 낮은 온(33~35°C)에서 활발하게 복제됩니다. 때문에 코, 목, 상기도에 국한된 증상을 주로 유발합니다. 대표 증상은 재채기, 콧물, 인후통, 미열 등이며, 폐렴이나 기관지염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러나 유아나 면역저하자에게는 2차 세균 감염 위험이 있습니다.
리노바이러스는 공기 중 비말 전파뿐 아니라, 손 접촉을 통한 간접 전파(fomite transmission)가 매우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가 묻은 손으로 눈, 코, 입을 만지면 쉽게 감염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리노바이러스에 대한 특효약이나 백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감기 증상 완화제나 해열제를 사용하는 대증요법이 일반적입니다. 또한 항생제는 바이러스성 감기에는 효과가 없기 때문에, 항생제의 오남용을 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단순 감기부터 팬데믹까지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는 최근 몇 년간 COVID-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이 바이러스는 감기의 원인 바이러스 중 하나로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원래 1960년대 초에 처음 발견되었으며, 인간에게 감기를 일으키는 종류로는 4가지(HCoV-229E, HCoV-OC43, HCoV-NL63, HCoV-HKU1)가 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4종의 인간 코로나바이러스는 대부분 가벼운 상기도 감염을 일으키며, 어린이와 노약자에게는 하기도 감염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리노바이러스처럼 재채기, 콧물, 인후통을 유발하며, 대개 7~10일 이내 자연 회복됩니다. 하지만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19(COVID-19)는 훨씬 강한 병원성을 지닌 변종 코로나바이러스입니다. 이들은 감기와는 전혀 다른 범주의 질환이지만, 같은 계열 바이러스라는 점에서 감기 바이러스의 ‘확장된 진화’ 형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로 돌연변이가 활발하고, 숙주 세포의 ACE2 수용체에 결합하여 침투합니다. 특히 SARS-CoV-2는 ACE2 수용체 발현이 높은 폐세포를 주로 공격하여, 심각한 호흡기 합병증을 유발합니다. 감기 바이러스로 분류되는 일반적인 코로나바이러스는 아직까지 백신이 존재하지 않지만, COVID-19 이후 RNA 백신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향후 감기 예방을 위한 백신 개발 가능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단순 감기 증상이라 해도 코로나바이러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최근에는 PCR 검사를 통해 감별 진단을 하기도 합니다.
그 외 감기 유발 바이러스들: 아데노, 파라인플루엔자, RSV 등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리노바이러스와 코로나바이러스 외에도 수십 가지가 존재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바이러스는 아데노바이러스(Adenovirus), 파라인플루엔자바이러스(Parainfluenza),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인플루엔자(Influenza) 바이러스, 보카바이러스(HBoV), 엔테로바이러스(Enterovirus) 등입니다. 아데노바이러스는 눈, 장, 폐 등 다양한 기관에 감염을 일으키는 DNA 바이러스로, 감기 외에도 결막염, 장염, 폐렴을 유발합니다. 감기 증상으로는 인후통, 기침, 발열, 근육통 등이 있으며, 소아의 경우 폐렴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아데노바이러스는 수영장, 타올 등 간접 접촉으로도 감염되며, 생존력이 매우 강한 바이러스입니다.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와 이름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바이러스로, 특히 어린이에서 후두염이나 크루프(Croup)를 자주 유발합니다. 이 바이러스는 계절성 감염 특성이 있으며,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감염이 증가합니다. RSV(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는 특히 영아와 노약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감기 바이러스입니다. 일반적인 감기 증상에서 시작되지만, 하기도로 내려가면 모세기관지염이나 폐렴으로 악화됩니다. 전 세계 소아 호흡기 입원 원인의 약 30~40%가 RSV입니다. 최근에는 예방 목적의
항체 치료제(예: 니르세비맙)가 등장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엔테로바이러스는 여름철 감기의 주요 원인으로, 수족구병, 무균성 뇌수막염, 급성 바이러스성 심근염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주로 소아에게 많으며, 오염된 손과 물건, 분변으로부터 전파됩니다. 여름에 감기 증상이 있다면 엔테로바이러스 감염을 의심해야 합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나타내지만, 엄밀히 말해 ‘독감’으로 분류됩니다. 전신증상이 강하고, 백신과 항바이러스제가 존재하며, 유행성이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감기와는 구분하여 관리합니다. 휴먼보카바이러스(HBoV)는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감기 바이러스로, 소아의 감기와 폐렴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독립적 감염보다는 다른 바이러스와 동시 감염되는 경우가 많아, 감기 진단의 복합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결론
감기는 하나의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는 단순한 질환이 아니라, 200종이 넘는 다양한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는 증후군에 가깝습니다. 리노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아데노바이러스, 파라인플루엔자, RSV 등 각각의 바이러스는 증상, 계절성, 감염력, 합병증 위험도에서 모두 다릅니다. 따라서 감기를 ‘가볍게’ 여기는 대신, 그 배경에 있는 다양한 바이러스 생태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 고령자, 만성질환자에게는 단순 감기조차 위험할 수 있으므로, 위생관리와 개인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